해군에 복무중인 아들이 진해 군항제에 구경하러 오라해서 
4월4일 진해 군항제에 댕겨왔다. 
 
마침 진해 장복산에 가는 산악회가 있어 도랑치고 가재잡고 
일단 묻혀갔다 묻혀왔다. 
 
안민터널에서 내려 아들과 랑데뷰한후  
진해에서 경치가 좋다는 여좌천-해군사관학교-해군기지-내수면 양식연구소- 장복산 입구 시민회관 
요렇게 한바쿠 했다. 
 
날씨도 좋고 벚꽃도 만개했다. 
그리고 진해가 사람이 많아 인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할정도로 
좋았다. 

 

여좌천! 
TV 드라마 <로망스>에 나오기도 했다한다. 
장복산 공원앞에서 시작하는 개천양옆에 벚꽃, 개천 바닥에는 유채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나무로된 휀스와 잘 어울려 보인다. 

 

 내수면 연구소에서 여좌천을 따라 내려오면서 담아봤다. 
중간중간 여좌천 개울에 내려갈수도 있다. 

 

 마눌대왕님과 아들! 

  밤에 야경사진 담으면 더 멋있을것 같다. 
 

 흐더러지게 핀 벚꽃! 
여좌천! 벚꽃터널을 통과했다. 

 

 진해 내수면 연구소에 잠시 들러본다. 
호수는 아담하나, 경치는 제법이다. 


 한바쿠 빙빙 돌아 나온다. 
 입구에 전망대가 있다. 
 

 장복산을 바라보고 
근데 초점이 수문여는 기어에 맞춰졌나? 
 

 호수위에 축 늘어진 벚꽃 


 

 요기 분위기 있는곳 같은데 

 

 이순신장군 동상! 

진해여고 앞을 지나 진해시내로 들오오니 
축제분위기가 난다. 

 

 군항제에 한몫하는 조랑말! 

아들이 잠자는 곳에 잠시들렀다가  


해군사관학교로 간다.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나 군항제 기간동안 출입이 가능하다 한다.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보이고 

 

 

  박물관을 지나 바다 가까이로 다가서 본다. 
 

 이곳에까지 벚꽃이 피었다. 

 

진해만 앞 바다! 
 
 

 해사 졸업생 전몰 추모비! 

 

 실물크기로 복원한 거북선도 구경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군함이 있는곳에 가본다. 

 

 전함 682호도 담아보고 


 

 옆에있는 전함도 담아본다. 


오늘 강감찬함을 구경했다. 
순수 우리기술진들이 만들었다 한다. 

 

 중앙시장에서 시민회관으로 걸어오다가 벚꽃길이 멋있길레 함 담아봤다. 

 

 

 

중앙시장쪽으로 나와 시민회관가는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승차거부!  
낭패났다.  오후5시까지 시민회관 주차장까지 가야 하는디 
 
에궁! 할 수 없이 걸어서 시민회관까지 왔다. 
완전 노가다! 나는 괴안은데 마눌대왕님이 거의 쓰러지기 직전 이다. 
 
차라리 경화역까지 가서 구경하고 택시탔더라면  승차거부 안했을 텐데 
 

산을 타는사람들은 천추산에서~장복산까정 7시간 탔다한다. 
거의 비몽사몽한 눈빛을 가지고 모두 시민회관으로 모였다. 
 
모처럼 아들과 마눌대왕님과 진해 벚꽃 구경 잘했다. 
이번에 고생한것 경험삼아 담에는 더 멋진 진해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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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화강암과 어우러진  한폭의 산수화!

 


 “푸른 하늘을 깎아세운 만 길 봉우리”라 읊었던 옛 시인의 표현만큼이나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 신선봉,
오봉에 이르 기까지 모두 거대한 화강암으로 되어있어 맑고 푸른 하늘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봉우리들 사이로 수 십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 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세종 때의 문장가이며, 한성부 판윤을 두 번씩이나 지냈던 서거정은 만장봉 아래에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 한다.

 

<높은 다락에서 술잔들고 한번 웃어보는데
수많은 푸릉 봉우리 뽀죽뽀죽 무더기를 이루었고
십년세월 하는일 없이 귀거래시(歸去來時)만 지었는데
뱍발이 다정하여 자꾸만 재촉 하누나?

 

 

 

 

 

같은 방향의 사람들!

 

고향이 같고

고등학교 선후배이며

 

그리고 산을 좋아하여

모이신 대성명산회!

 

우리는

시선이 같고

생각이 같습니다.

 

 잠시 오름질하다

처다보니 벌써 보이기 시작 합니다.

 

  다락 능선에서 바라본  자운봉(가운데)정상

 

뭐! 글이 필요 없습니다.

대성명산회 홧팅!

 

 포대능선 방향 조망

 

 좀더 가까이

 

 도봉의 주봉들 (좌로부터 암벽등반의 메카 선인봉,만장봉,도봉산의 정상 자운봉(739.5m),

보이지 않지만 그 오른편으로 일반 등산객이 오를수 있는 최고봉 신선대(725m).

 

  Y협곡을 건너 오름질 하는 대성명산회원님들!  포대능선의 정상에서  쭈~~욱 내려 갔다가 다시 꼭대기로 올라 옵니다.

 

온몸운동 구간으로 볼록배님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손의 완력이 부족하거나 심장이 약하신분은 통과사절 입니다.

 

 오늘 또 사고 났습니다.

다리에 붕대감고 헬기로 실어 나름니다.

 

 

신선대에서 조망!

북한산(삼각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자운봉 정상에서 바위하는 사람들!

 

 신선대에서 도봉 주능선으로 조망!

 뜀바위와 칼바위...좌측상단에 북한산 인수봉도 눈에 들어 옵니다.

 

 

신선대에서 자운봉 조망!

하강! 착수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것 담을려고 20분 기다렸습니다.

 

에고! 늦엇다

ㅎ~ㄷㄷㄷㄷㄷ

 

선인봉!

 한번 더  뒤돌아 보고

 

 선인봉 아래 천축사(天竺寺)

 

도봉산 능원사!

미륵존불을 주불로 모시는 용화전이 본당인 보기드문 사찰로
단청도 황금단청 입니다.

 

도봉산의 광륜사!

초파일 연등이 가득합니다.
조선 익종의 비였던 조대비의 기도처인 만장사, 금득사를 거처 2002년 청화스님이광륜사로 개원했다 합니다.

 

광륜사에서!

 

각자의 소원을 빌어 봅니다.

 대성 명산회의 즐산 안산도 빌겠습니다.

 

아직도 자기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광륜상에서~

 

 11회 전병길 대장 입니다.

 신선대 정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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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봉에서 시산제 지내고 왔어요

 

일 자 : 2009년 3월 21일(토요일)
장 소 : 충북 단양 월악산 국립공원내 제비봉
높 이 : 721M
산행시간 : 약 3시간
산행코스 :  장회나루 주차장→제비봉-->545봉→다람쥐골 능선→암릉구간→전망대→ 장회나루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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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봉 간판부터 맨위로 올려 노코

등산을 시작 합니다  

 

 

 오늘 산행에 대해서 설명하는 아후스님!
여하튼 산 꼭대기 올라가면 먹을것 있고

호수가 시원하게 보이고
날도 좋고~~

알아 들었는지 몬 알아 들었는지~

 

무조건 끄떡끄떡~

 

 올라 설수록  조망이
시원하게 보이네요

 

벌써 내려오는 사람은 뭐시고~

 

 

눌러 달라고?
고 옆에 바위틈 노송님에게
허락 받았나?

 

아따 빨리 눌러요
거시기 벌어지것네?

 

눌렀다! 빨리 내려와!
에구! 말귀도 몬 알아 들어요

 

 

 와우! 날아 가고 싶다

어디까지~

 쩌기까지요


제비봉이니 제비처럼!~

 

 계단도 멋지다!
제비봉까지 시산제용 돼지머리랑 떡 막걸리~지고 올라가는 묏님들~
아마! 산신령님께서 별도로 생각해 준다는 애기를 들었다.

  

 좀 더 넓게 담아 볼려고 하다가
뒤쳐졋다.

ㅎㄷㄷㄷㄷㄷ

 

  

 청풍호수와  숨박꼭질도 하고

 마지막 급경사 오름질 끝에
제비봉 정상에 ~

 

 표교 721m! 제비봉 정상에서 시산제를 지내니
근처 산에 계시는 산신령님 모두가 참석 하시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모두가 진지해지고 성스러운 시간

 

 

 평택 뫼산악회 시산제!

마음을 다하여 올 한해 안전산행과 회원님들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회장님이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게
축문을 낭독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숙연해 진다.

 

오랜만에 보는 순수 우리의것!

 콧구멍에도 배춧잎 끼워줘요?

 

 안돼!

숨은 쉬어야 되잖아!

앗! 그것을 생각 못했네요

 

 정상에서 사봉 방향 조망

 

 꺽을려다 말았다.

청춘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옥순봉 너머 이어지는
션한 뱃길!

 

 

 켈리에게 한송이 꺽어 줬더니
입에 물고 귀에 꼽고 난리났다.

 

 와 신난다!

돼지 귓대기도 머거보고

막걸리맛 끝내줘요

 

 

 생강나무 꽃에 벌이 부터 버렸네요

 좀 가만히 있어!

와그리 왔다갔다 하노?

 

 

 제비봉 분재!

 원래는 골짜기에 있었는데

 

심심해서 등로까지 올라 왔쥬!

 

 무찐꽃 한컷 더 보너스!

조약도 삼문산에서 본

그런꽃은 없노?

 

 왼쪽 팔 올리면 큰일 남니다.

단디 붙들어요!

 

 

  뭐!

이런 그림도 보이고

 

 드뎌 장횟나루까지 내려 왔슴다.

아직 요기서 배 타본 일이 한번도 없다.

 

 

오다가 박달재에서

 

 

금붕이도 만나보고

 

 

캐리 데리고 댕기면서

울 아들 생각 마니 했습니다.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진달레꽃 보다 더

순수한 사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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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과 암릉길 그리고 호수(춘천 오봉산)

 

++오봉산(779m)은 춘천 소양호를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면서

암릉길 걸을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평택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니 약 2시간 30분 정도에 닿을 수 있고,

산행 후 배를 타고 소양호 물살을 가르며 나오는 기분도 일품이었다.


배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쉽게 정상을 밟을 수 있고,

 청평사를 거처 소양호로 내려가는 데 약 4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봉산은 이름 그대로 주능선에 5개 봉우리가 이어진다.
배후령 방면부터 1봉(나한봉)~2봉(관음봉)~3봉(문수봉)

~4봉(보현봉)~5봉(정상, 비로봉)의 순서로 늘어서 있다.

 

이중 비로봉을 거처 청평사 방면으로 뻗어내린 암릉과 소나무 그리고 소양호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길이 오봉산행의 백미가 아닌가 생각 한다.

 

하산길인 선동계곡에 자리한 청평사, 구성폭포, 그리고 소양호에서 청평사 가는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노송 사이로 보이는 소양호

 

  배후령에서 20분 가량 올라서면 주능선 삼거리 안부가 나타나고,
이 삼거리에서 왼쪽(북동)으로 암봉을 오르내리는 암릉산행이 시작되면서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제2봉을 밟는다.

 

  눈 쌓인 오봉산!
 아이젠 준비도 없이 왔는데~
 그리고 위험한 암릉 난코스를 기다시피 옮겨 갔다

 

저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

 

 청솔바위다.

  제2봉에서 10분쯤 가면 정면에 청솔바위가 보인다,

   아래쪽 바위사이로 뿌리가 보인다.

 

  노송들의  봄맞이 기지게!

제 3봉 부터 위험한 암릉길이 시작된다. 

아이젠 없이 올라가야 하는 급경사 암릉길!

 

제3봉 암릉이 끝나는 곳에서 안부로 내려선 이후에는 60도는 됨직한 급경사 절벽을 기어올라야 한다. 

밧줄이 설치돼 있지만, 양쪽이 수직절벽이다..

 89년 이곳에서 추락사한 등산인을 기리는 추모비석도 서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위험한 곳임을 알수 있다.

배후령 넘어 화천 간동 방향의 조망!

 

     멀리 보이는 파로호!
   옛날 군대있을때 배후령 고갯길 그리고 화천 파로호에서 시누크 헬기타든 생각이 난다.


   지금은 길이 뚤려 좀 어색하지만   지금 오봉산에서 바라보니 그 당시 시누크 헬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약간의 황사가 나타났지만 잘 보인다

 

 바람도 찬데

눈밭에서라도 점심을 해결하고 가야 한다.

 

꿀맛!

땀흘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소양호가 보이기 시작 한다.

 

 

 

 구멍바위! 위에서


정상인 제5봉 비로봉은 사방이 숲으로 에워싸여 조망이 없다.
남릉으로 10분쯤 내려가면 경사가 만만치 않은 암릉길이 시작되고
이윽고 이 암릉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멍바위 구간이 나온다.


구멍바위 내부 통과!

볼록배님들은 잠시 검문을 받아야 한다.

 

 구멍바위를  빠져나와 20분 정도  내려서면 688m봉 전 안부에 다다른다.

 388봉 갈림길이 있는데, 노약자는 오른쪽 선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688m봉을 넘으면 능선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이중 오른쪽, 바위 위로 소나무가 있는 능선길은 청평사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로 가는 길이고
 이곳 바로 아래로 밧줄 난간이 설치돼 있어, 이곳이 남릉 하산길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여기저기 추모비가 보인다.

 위험 구간이다.

 

 점점 가까이 보이는 소양호

 

 

 

 노송과 호수와 암릉!

 한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왔다.

 

 좀 쉬었다 갔으면 좋으련만

안내 산악회를 따라와 청평사 아래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하기에 그닥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다.

 

 

 암릉길에서 만난 외로운 망부석!

그옆에 서있는 소나무가 망부석을 위해

부제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인생은 저런거야

혼자는 아니거든!

 

 소양호의 모습!

 

 청평사 위쪽에 적멸보궁 터가 있다더니

 명당자리는 틀림없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섬속의 산사! 청평사>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한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됐으며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중건, 대사찰이 되었다.

 

청평사 극락보전

국보 115호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아름다움과 균형미가 1,000년을 이어오고 있다.

 

청평사는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댐이 생긴 이후 더욱 유명해진 사찰이다.

 

청평사의 현존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삼성각, 회전문(廻轉門,보물 제164호),
서향원, 청평루, 적멸보국, 해탈문, 큰방, 요사채 등이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강원도문화재자료 제 8호인 삼층석탑(공주탑)을 비롯하여 진락공부도(眞樂公浮屠),
 환적당부도(幻寂堂浮屠) 및 고려정원(高麗庭圓)이 있다.

 

 바위지대 하산을 모두 마치면 홈통처럼 패인 능선길이 이어지고
이윽고 청평사에 다다른다.

 
 청평사는 보물 제164호로 지정된 회전문, 극락보전 왼쪽의 수령 800년 된 주목(수고 10m, 밑둥 둘레 1.5m) 등 볼거리가 많다.

 

 대웅전

 

 소림사 무술영화에 나오는
그런 느낌!

여느 산사와 건축양식이 좀 다른것 같다.

 

 중회랑

 

 경운루!

 안에서 바깥을 본다

 

 

  경운루내 연등!

 

 청평사와 오봉산의 한 봉우리.

 

  구성폭포

 

청평사에서 소양호로 내려오는 중간, 때에 따라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는 폭포로서 높이 10m에 12폭 병풍을 펼친 듯한

길이 40m 수직 절벽 가운데로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이다.

가뭄에 물이 제법 내려온다.

 

 상사뱀과 공주의 동상!

상사병으로 죽은 평민청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을 지녔다.

 

 소양호에 나타난 괴물!

일명 하얀 개구리!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양댐 가지 약 15분 걸렸다

 

 대포 맞은 하얀 개구리 괴물!

 

  소양강에 괴물 나타났다는 소리를

TV  뉴스시간에 듣지는 못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양댐!
가슴이 뻥 뚤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수 있다.
소양댐! 물 박물관 옥상에 전망대가 있다.

 

 

소양댐 수문쪽이다.
장마철에 수문을 열어 놓는 바로 그 장소이다.

 

암릉과 노송사이로 보이는 소양호수!

청평사에서 소양호까지 계곡길을 따라 내려 오는 오솔길이 너무 멋있다.
가을단풍 철에 소양댐에서 배타고 청평사 입구 오솔길을 따라 한바퀴 돌고 싶다.
올 가을에

소양강 괴물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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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위에 스민 진한 약초향(조약도 삼문산)

 

 

1. 일자 : 2009.3.7(토) 맑음.

2. 산행코스 : 등넘밭재-큰담안-작은담안-부엉이바위-쟁기바위-움먹재-

등거산-움먹재-삼문산(망봉)-파래밭재-상여바위-탕근바위-장룡산-죽선

3. 산행시간 : 3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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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도라고도 불리는 조약도를 가기위해

평택 공설운동장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습니다.
가는데만 5시간 30분 걸렸지요.

 

흑염소와 약재가 많고 효험이 있어 약산도라 한답니다.
김소월의 시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의 약산은 아니지만
남한땅에서 유일한 지명이고, 약산 진달레도 유명하다 합니다.

 

조선시대때 유배지이고, 그동안 늘 머나먼 섬으로 느껴졌지만 실제 약산도에 와 보니,
그 약산도는 이제 머나먼 섬이 아니었습니다.

 

고금도에서 약산도를 잇는 다리가 완공되었고, 육지에서 고금도를 잇는 다리가 완공되어
육지에서 고금도를 지나 약산까지 차로 갈 수 있으니 이제는 육지가 되어버린 느낌 입니다.

 

 

 

해발 397m인 삼문산(三門山)은 전남 완도군 약산면을 이루는 조약도 최고봉으로
섬이름이 조약도로 되어 있지만 이곳 섬 주민들은 '약산도'로 부른 답니다.

조약이든 약산이든 약자가 들어갑니다.
 
삼지구엽초를 비롯하여 130종에 이르는 각종 약초가 지천에 늘려있고 약초를 먹고 사는
흑염소 울음 소리를 들어며 움막재로 올라 등거산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다도해의 점점이 많은 섬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바다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삼문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주능선 동쪽 분지인 삼개문에서
땔감으로 쓰는 초나무나 풀을 베어 지게에 메고
서쪽 천동나루 방면으로 넘어올 때 망봉과 등거산 사이 움먹재나 망봉과 장룡산 사이 파래밭재와 큰새밭재를 넘어다녔다 하며

즉 세개의 고개 움먹재, 파래밭재, 큰새밭재를 세 문(門)으로 보았던 것이라 합니다.
삼문산 좀 이해가 가는것 같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삼문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습니다.
봉화대는 고금진의 망덕산, 신지진의 상봉, 가리포진(현재의 완도) 상황봉,
장흥 천관산으로 봉화를 하던 송신소 같은 곳으로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강진군 대구면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의 발상지이며 청자생산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곳 입니다.

지금도 청자가 출토지라고 표시된 발굴현장을 목격할수 있었습니다. 

 

마량은 완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섬들인 고금도, 조약도(약산), 평일도(금일),

생일도 등으로 가는 배가 뜨는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옛날에 군마(軍馬)를 모아서 한양으로 보내는 장소라서 마량이라 불렀다 합니다.

 
등에 땀이 나다가 마는 약 3시간 정도의 삼문산 산행이지만
토끼바위, 쟁기바위, 부엉이바위 같은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만날수 있었으며

삼문산의 매력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남해 바다와 여기에 떠 있는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돌아 오는 다리를 건너

약산도 공화국 국경을 지나고

 

 


 산행기점 <등넘밭재>
우리 끝까지 가치가자 언니!
천천이 가자고요

 

움먹재를 통과하는 묏님들!

빨라지는 발걸음
바다를 빨리 보고 싶어서 인가? 아니면 잡힌 토끼 수확하러 가는지?


 망서림!


찍을까 말까?

형님 그냥 눌러버려요.

 

 저거이 토끼바우란다.
염소띠 아닌 사람들은 조심이 필요한 구간

 

 토끼바위 정상에는 뭐시거리 존기 있는지?
등에 땀나게 생겼네

 

 요기가 조약도(약산도) 전망대 아이가?
공짜점심 엄따 카디마넌 ~
득암리 마을 어촌과 다도해를 눈으로 넣어 가슴에 담고

 

 조금 오른쪽으로 바다를 개간하는듯

 

 광각 으로 한꺼번에  

 

 사방으로 펼쳐지는 남해 바다와 여기에 떠 있는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경!

요거 볼라고 5시간 반이나 차타고 왔제!

 

 봉화대

삼문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다.
봉화대는 고금진의 망덕산, 신지진의 상봉, 가리포진(현재의 완도) 상황봉,
장흥 천관산으로 봉화를 하던 송신소 같은 곳으로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산꾼의 주식이 되어버린 인절미
ㅎㅎㅎ

누룽지에 인절미면 진수성찬이지 뭐! 

 

 점심 해결 했으니 떠나자고요
인생 뭐 있어!


두루두루 돌아 댕기며 사는거지 뭐~~
마자요 형님!

 

 상여바위

 

저기 뵈는기 뭐시고
뭐신데요 형님! 지는 안비는데
돌무덤 가은거 말이여~ 형님은 원시라 잘보이나요?

 

그냥 지나가자 험해서 몬 올라간다.
요새 심더러서

 

 

소죽도와 대죽도

 

 엄마 육지 간다면서!
그래! 와 카노?


나도 따라 갈래~

 살살 조심해서 따라 오거래이

 

 산그늘님이 꽃이름 말해 줬는데
까묵어서 그냥 사진만~용담이라 카던가?

귀한 꽃이라 카던데


 

어린 새끼들

잠 께울려다 놀래킬라

살살 하세요

 

불사초

 첫 대면이다.

 

오늘 산에서 보기 드문 사람들이 왔다
그것도 조약도 같은곳에서~

 

미국사람이지만

소주에 횟감안주 없어서 못 묵는다.

 

 노루귀? 그냥 옆에서 들은 이름이다.

꽃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사진기는 뭐하로 디리대노?
그냥 넘들이 디리대니까 디리돼요

 

 

무슨열매인지  참 이뿌게 생겼네

 

 와우! 동백이 활짝 피었네
역시 조약도(약산도) 공화국은 따습네~육지보다


 

 봄처녀 맞이할 걸음연습!

 캇!

 

다시 해봐요?

우씨!

 

 오랜만에 자연산 싱싱표 회를~
입에 착착 들러 붙었다.

 

 어두워서 사진이 시원찮아 그렇지 진짜 맛있는 숭어회

 

 

 가까운 어시장에 잠깐 들러
어리비리 진사의 눈에는 이런것만 보이니


 

등대 가는 둑빵을 이렇게 만들었다.
테마공원가은 느낌!

 

여기서 조약도 공화국

여행겸 산행을 마쳐야 한다.

 

날도 어두워 지고
조약도여 안녕~! 

 

 

안성산꾼 형님!

저 오늘 어땠어요 잘했지요

담에 가치가요?

 

형님이 영어가 안되니

유가 한국어좀 배워 오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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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오후(미리내 성지에서)

 

 

일요일!
아들휴가도 끝나는 날이고 모처럼 딸아이도 집에왔습니다.
이번주에는 온 가족이 가까이 미리내 성지에 바람씌러 댕겨왔습니다.

 

안성에서 가장 맛있다는 중국집에도 들릴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르니 밥을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것 같은 느낌 입니다.


이제야 부모의 마음을 좀 알것 같기도 합니다.

딸아이도 대학 4학년이 됨니다.
엊그제 목욕시켜준것 같은데, ~~세월이 빠르기도 하네요.

 

=================================================
무신론자가 천주교의 성스러운 곳!
미리내 성지에 대하여
사진으로 담고 글을 쓴다는것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편안하게 처다보고,

본대로 느낀대로 몇자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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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

 종각에 올려진 <미리내 종>은, 1917년 강도영 신부가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로부터 들여 왔으며,
일제시대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군 포탄제작을 위한 징발을 당해 하마터면 훼손될 뻔하였다 합니다.

 

  

 주차장에서 처음 눈에띄는 글!

 

 

== 미리내 성지의 유래====     
미리내 성지의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순수 우리말로서 시궁산(時宮山 515m,

神仙峰으로도 전해짐)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보석처럼 비추이고, 그것이 마치 밤하늘 별들이 성군(星群)을      
이룬 은하수(우리말 ‘미리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우리의 옛 지명이다.     
     
미리내와 인근의 이십리 안에 있는 한덕골, 골배마실, 검은정이 등의 교우촌들은 본래 신유박해(1801년)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산속을 찾아들어와 미리내      
인근 산골짜기로 옮겨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훗날 미리내는 공소와 본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이곳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들을 이루며 주로 척박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나눔과 섬김의 전통이었다.     
                   출처 : 충주전통문화회

 

 미리내 성요셉 성당 1906년 건립

 

미리내 성지 초입 우측 편에는, 초대 주임 강도영 마르코 신부와 본당신자들에 의해
1906년에 건립된 <미리내 성 요셉 성당>과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신자들 자녀에게 천주교리와
초등교육을 실시했던 미리내 교우촌의 <해성학원 교사> 건물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성당 옆에 있는 깊은 우물은, 강도영신부와 본당

신자들이 목을 축이던 유서 깊은 우물이라 합니다.
현재 복원공사 중으로 우물전각이 세워지고 있었어요.

 

 박해, 고통

 

 

< 가족>

 

 밴취에 앉아 휴식을 취해 봅니다.

천주교 재단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놈이 천주교에 대해 열심히 설명 합니다.

 

< 하늘>

  파란 하늘에는 크레파스를 칠해 놓은듯 비행기가 날아 갑니다.

 

 

 

소나무!
 
바람과 햇빛과 세월을
미리내 성지와 함께~
 경당가는 오솔길에 서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끈>

 아들은 엄마랑

     딸은 아빠랑 손잡고 걸어갑니다.

          손을 내민적도 없는데~~

 

그냥 자동 입니다.

당초에는 붙은 몸이기도 하지요

             

 경이로운 자연

                                                                     매화가 눈웃음 쳤습니다

 

 

경당

소규모의 성당처럼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김대건 신부와 그의 어머니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Ferreol 高)주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곳으로 모셔와 안장했던

이민식의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묘소입니다

 

 

경당앞 쉼터
계곡길을 오르면 시궁산으로 가는 등산길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니’
순교 영성이 흙으로 깃 든 미리내 성지의 진토(塵土)

 

 

 


  

 김대건 신부 상

===================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한 점 흠결 없이 순교하였다 .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은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 치명한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킬 수 있었다.

============================ 경당앞 묘비에 쓰여진 글 입니다
 
 

금방 종소리가 울러 퍼지는듯한 ~~
신비감과 고요 그런 본위기!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에도

해가 저물어 갑니다 

 


 


 

 기도!

그냥 무심코 처다먄 보아도
마음이 쏠림니다.

 

저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얼마나 평온할까?

 

 아들이 이담에 돈벌면 저런 별장 지어 준다고 합니다.
통나무로 불을짚혀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 오름니다.
믿거나 말거나~ 오늘은 함 믿어보지 뭐!~

 

미리내 성지 입구

미산 저수지에 황혼빛이 내려 앉았습니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지요.

 

봄볕이 내리는 3월1일 오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이윤일 요한 성인, 16인 무명 순교자들이

꽃피운 순교의 영성을 묵상하면서,
성지순례후 집으로 돌아오는길

 

비록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모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미리내 성지 바로가기 

http://www.mirin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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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겨울! 오는 봄!
아쉬움의 뜻인지 어김없이 추워졌다가
풀렸다가~반복 합니다.
경제 체감온도가 썰렁하니 아직은 마음까지 추워요

 

 여느때 같으면
산정에 올라 수 많은 산군을 굽어볼 시간이건만

몸속에 백두대간이 좋지 않아
낮은곳에서 그쪽을 바라 봅니다.


그동안 저의 백두대간이 무거운 배낭짐에다
카메가 장비메고 ~돌아댕긴결과 디스크란 넘이
발길을 잡네요


오늘은 산(山)대신 들(野)로 가서
친구들을 찾아 봅니다.

 

 안성천 주변과 안성목장을 찾아
봄이 오는 소리
귀 기울려 봤습니다.

 

 

.날씨가 풀리니까
뒷동산을 찾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 갑니다.
노인분이 가끔 보이는걸 보면 봄이 오긴 온 모양 입니다.

 

   #1) 안성천에서~ 

 

 겨울넘은
고개숙인 강아지풀위에
겨울의 끝자락을 내려 놓구요


떠나기 아쉬운듯      
아직 동네 어귀에서 눌러 앉았 있답니다.

                                                                                                                        

                                                                                                                                                                                                        안 (#2 안성목장의 청보리밭)

 

5월이 되면 키큰 청보리물결이 출렁일 안성목장
아기 청보리 순들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3 안성목장의 청보리밭) 

 

양지바른 곳에는 제법 푸르름이 보입니다.

 

(#4 안성목장의 청보리밭)

 

길게 늘어진 그림자속에

 왠지 따뜻하게 다가오는 봄의 기운이
낯설게 느껴지는 겨울의 끝자락

 

 <#5 안성천에서>

 

 파란 하늘에 길 구름과 친구하여
지나가는 겨울바람과 속삭이며

키큰 갈대에는


아직도 추위가 걸려 있지만
이제 곧 떠날 것입니다.

 

 

 <#6 안성목장에서>


  오늘을 보내야 할 시간 입니다.
넓은 초원 저멀리
붉은노을 사이로 보이는
십자가!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까?

들(野) 친구들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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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와 이별(덕유산 눈꽃 대신 사람꽃만 만발하고~) 

 

 눈꽃과 상고대를 기대하고 찾은 덕유산
그러나 눈꽃도 상고대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꽃만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언제나 붐비는 안성 매표소 입니다.

  

 덕유평전 입니다.

 

 덕유평전 S자 길을 당겨 보았습니다.

 

 중봉에서 남덕유방향 조망

 

 

 중봉에서 향적봉을 바라 봅니다.

 

  향적봉을 당겨 보았습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송신탑과 향적봉 대피소는 찹쌀궁합 입니다.

 

 향적봉 정상에서 눈꽃 대신 사람꽃

 

 곤드라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의 기다림줄이
향적봉 정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설천봉 상제루 일대

 

 곤도라 이용 등산객
맨 마지막 입니다.

 

 나무 다리에 걸린 해
상제루에서 식당건물로 넘어가는 다리에
해가 걸렸습니다.
금방 어두워 질것 같습니다.

 

 소나무 너머로 햇님이 숨었습니다.

 무주 리죠트 연못옆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은 등산객들을 기다림니다.
무주리죠트는 어느새 캄캄한 밤 입니다.

손각대로 담아 ~~분위기가 좀 이상 합니다

 

 

 

바람도 숨어버린 덕유산 향적봉에는 눈꽃과 설화 대신
사람꽃이 만발했습니다 

 

겨울 나그네와 덕유산에서 이별 했습니다. 
봄 처녀를 만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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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군대간 아들이 와서 서울구경을 했다.
서울시티투어를 해 볼까? 하는데 날씨도 춥고, 와이프와 아들이 가고싶은 곳

(뭐 가고싶은곳이라기 보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경복궁이랑 대학로를 댕겨왔다.

 

 토요일은 군대간 아들이 와서 서울구경을 했습니다.
서울시티투어를 해 볼까? 하는데 날씨도 춥고, 와이프와 아들이 가고싶은 곳
(뭐 가고싶은곳이라기 보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경복궁이랑 대학로를 댕겨왔지요.

 

 

 

그냥 가기 심심해서 카메라를 메고~~
안성에서 1시간 직행버스를 타고 남부터미널에 내려 3호선 전철로 경복궁역까지 거의 2시간 걸렸어요.

경복궁 둘러본지도 30년쯤 된것 같지요.

 

 경복궁은 조선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 이랍니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 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합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 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을 재건하여 정궁으로 삼았지만,
 경복궁은 재건을 미루어 250년 이사을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1868년에야 비로소 흥선대원군이 허약해진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했다 합니다.

고대 중국의 예법을 조선 왕실의 전통이나 현실과 조화시켜,
 전체적으로는 규칙적 배치를 따르면서 부분적인 변화와 파격을 가미했습니다.

 

 재건 경복궁은 14만 평의 광활한 대지에 약 330여 동의 건물을 지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었습니다.
중심부에 정무 공간을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그리고 곳곳에 정원시설들을 배열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85%에 달하는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외전 일부를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습니다.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흥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기거한 동궁도 다시 세워 원래의 면모를 회복 중 입니다.

 

 경복궁 입구에 도착하자 때마춰 거행되고 있는 '수문장 교대식'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4시까지 매시 정각에 홍례문 앞에서 재현되며
교대식이 끝나고 수문장들과 기념촐영도 할수 있었어요

 

 언제나 근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국보223호 '근정전'

근정문을 지나면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 입니다

 

 

언제나 근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국보223호 '근정전'


 

 경복궁 사정전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일상업무를 보던 편전이다
좌우에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방을 두어 겨울에도 이용할수 있습니다.
사정전을 나와서 경회루로 향 합니다.

 

                                                                                      마눌님과 아들이 궁궐옷을 입고~

                                                                                       아들은 따라하기 싫은 표정~ㅋㅋ

 

경회루 입구 왼쪽 건물

훈민정음을 창제한 수정전
수정전은 세종때 집현전을 설치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곳 이랍니다.

 

 경회루
국보 224호 왕이 주재한 잔치를 벌이는 곳으로 누마루에 올라서면 서쪽 인왕산이 병풍처럼 보입니다.

 

 

 강녕전
왕이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
그 뒤에 교태전이있으며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 입니다.

 

금방 궁녀들이 나올것 같은 느낌~~ 

 

 경회루
국보 224호 왕이 주재한 잔치를 벌이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곳 입니다.

 

 아미산의 굴뚝
왕비의 침전 뒷편에 인공으로 단을 쌓아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 단에 육각형 굴둑 4개를 나란히 세웠다 해요.


연한 주황색 적별돌을 쌓은 몸체위에 써가레가 달린 기와지붕을 얹고
그위에 4개씩 작은 굴둑을 모았다 합니다.

 

몸체에 조각된 무늬는 상징적 의미를 갖구요.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솔 불로초 대 돌 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한 답니다.


 

 

 수백년전의 숨소리를 눈감아 귀 기울려 봅니다.


어릴적에 가보고 30년이지나 가 본 경복궁!
발걸음을 더할수록 기품이 느껴짐니다.
볼수록 기품있고 잘생긴 모습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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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성동신협 산악회

   태백산 눈꽃산행에 눈처럼 묻혀갔다가 묻혀왔다.

 

눈, 사랑, 그리고 환희 
눈이 있어 더 행복한 세상!  
 
하늘로 통하는 길 크게 밝은 뫼 태백산(太伯山) 
그 밝음속에 좀더 밝아지는 나의 마음을 위하여
설화가 만발한 동화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목과 설경
살아서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푸름을 자랑하고 죽어서도 몇 백 년을 굵은 둥치로
남아 꼿꼿이 서있는 모습은 경외감을 자아낸다.

 

 만끽한 설화의 진수 

 

 눈꽃인지 상고대인지 
, 바람에 날린 눈이 나뭇가지에 얼어 붙은 것인지 분간이 안되지만
나뭇가지와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가 동화 속의 설경 같다. 

 

 동화속의 설경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눈밟는 소리만 귓전에 맴돌뿐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의연한 모습

 

사는동안/이태호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몫 만큼 살았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은 채로 
이별 없고 눈물 없는 그런 세상 없겠지만은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뿌린 만큼 살으렵니다. 
가진 만큼 아는 만큼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가난 없고 그늘 없는 그런 세상 없겠지만은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기다림

 바람과 역사

 그리고

 순백의 만남

 

 소망

 

 천제단(둘레 27m, 폭8m, 높이3m의 자연석으로 쌓은원형 돌제단) 
 
긴 허공을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에 나직하고/  사면으로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몸은 날아가는 구름을 쫓아 학을 탄듯하고/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비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니/ 굽이도는 오십천을 건널까 근심되네” 


  

 바람 서리꽃 
가지마다 설화가 피고 상고대(서리꽃)가 달려있다.

 

산마루의 설화

 

 산에서 점하나 빼면

신이라 했거늘

 

 예전 모습 그대로
 

 반재에서 당골까지 이어지는 2.2km의 당골계곡은 장군바위 등의 기암괴석과 이름 모를 폭포,
소와 다리가 함께하는 평탄하고 아름다운 눈길의 연속. 

 

 자연이 준 설경보다는  못하지만

 인간의 노력도 돋보이는  풍경

      당골 눈축제 현장에서

 

 이웃나라 일본에 최초로 노벨상을 선물해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만난듯한 느낌!


 

 갑자기 팽귄이 생각나게 하는

 설국의 나라에 선 사람들

 

 

이젠  넘어짐을 걱정해야 할 불안감이 찾아온 나이인가?
누군가가 이미 밟아버려 납작하게 눌러붙어버린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눈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것을 걱정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이젠 그런 설레임이 없어졌는가?
소복히 내려앉은 눈 위에 '뽀드득'하는, 마음안에서 울림이 끝없이 퍼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한발짝씩 내딛을때의 그런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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