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오후(미리내 성지에서)
일요일!
안성에서 가장 맛있다는 중국집에도 들릴 예정입니다.
딸아이도 대학 4학년이 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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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대로 느낀대로 몇자 적어 보겠습니다 =====================================================================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 종각에 올려진 <미리내 종>은, 1917년 강도영 신부가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로부터 들여 왔으며,
주차장에서 처음 눈에띄는 글!
== 미리내 성지의 유래==== 神仙峰으로도 전해짐)과 그릇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미리내 성요셉 성당 1906년 건립
미리내 성지 초입 우측 편에는, 초대 주임 강도영 마르코 신부와 본당신자들에 의해
그리고 요셉성당 옆에 있는 깊은 우물은, 강도영신부와 본당 신자들이 목을 축이던 유서 깊은 우물이라 합니다.
박해, 고통
< 가족>
밴취에 앉아 휴식을 취해 봅니다. 천주교 재단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놈이 천주교에 대해 열심히 설명 합니다.
< 하늘> 파란 하늘에는 크레파스를 칠해 놓은듯 비행기가 날아 갑니다.
소나무!
<부모와 자식의 끈> 아들은 엄마랑 딸은 아빠랑 손잡고 걸어갑니다. 손을 내민적도 없는데~~
그냥 자동 입니다. 당초에는 붙은 몸이기도 하지요
경이로운 자연 매화가 눈웃음 쳤습니다
경당 소규모의 성당처럼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김대건 신부와 그의 어머니 이민식의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묘소입니다
경당앞 쉼터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니’
김대건 신부 상 ===================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은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 경당앞 묘비에 쓰여진 글 입니다 금방 종소리가 울러 퍼지는듯한 ~~
103위 성인 기념 대성당에도 해가 저물어 갑니다
기도! 그냥 무심코 처다먄 보아도
저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아들이 이담에 돈벌면 저런 별장 지어 준다고 합니다.
미리내 성지 입구 미산 저수지에 황혼빛이 내려 앉았습니다.
봄볕이 내리는 3월1일 오후 꽃피운 순교의 영성을 묵상하면서,
비록 느낄수 있었습니다.
미리내 성지 바로가기 <"이곳에 올릴 이미지 링크" border=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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