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산꾼/ 부산 금정산, 해운대 스케치 
 
1. 날짜 : 2008년11월29일~30일 
2. 날씨 : 초반(흐림), 그후 맑고 바람이 겁나게 불었슴 
3.산행코스:범어사-금정산-북문-동문-남문삼거리-약수정사-소림사-금강공원입구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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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에 댕겨왔다. 
서울에는 삼각산, 대구에는 팔공산, 광주에는 무등산~ 
부산에는 금정산!  
 
각각의 도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으로  
부산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산이란다. 
 

 

 일단 부산금정산성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터넷을 찾으니~

------<금정산성  개요>------

1.종 목    :  사적  제215호 
2.명 칭    : 금정산성(金井山城) 
3.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4.수량/면적: 830,370.24㎡
5.지 정 일 : 1971.02.09
6.소 재 지 : 부산 금정구  금성동 일원 
7.시 대    : 삼국시대
8.소 유 자 :  국유,사유
9.관 리 자 : 금정구
10.일반설명 : 전문설명

------->근대 설명이 길다.

            그냥 개요만 보시고 pass~~~휘리릭 333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17,337m이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의 우리 나라 최대규모급의 산성이다. 해발 810m인 금정산(金井山)
정상부에서 서남쪽으로 계곡을 포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으며,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과 수구문·암문 등의 시설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은 1703년(숙종(肅宗)29)에 경상 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동래 부사 박태항(朴泰恒)으로 하여금 쌓게 한 것으로서, 둘레 9,011보(步),
높이 15척(尺)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전인 1667년(현종(顯宗)8 )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보수할 것을 건의 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보다 더 오래된 시기에 축성되었고

돌보지 않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산성은 낙동강의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하기 위한 성곽임이 확실하고, 또 성의 규모나 성벽의
 축조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축성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 뒤 1707년 (숙종(肅宗)33) 동래 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성이 너무 넓다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
등의 시설을 보강하였다.

 

이후 1774년 (영조(英祖)50)에 이르러 성(城)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려워 일단 혁파하였다.
그러나 1806년(순조(純祖)6)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성을 중수하였으며,
 1824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서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남·북문에
문루(門樓)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이때의 길이는 32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숙종 이래의 산성 수축 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복설비(金井算城復設碑)가 지금의 동래구 장전동에 건립되었다.

이 산성에는 산성별장(山城別將) 한사람과 군관(軍官) 두사람·진리(鎭吏) 두사람·
지인(知印) 두사람 및 사령(使令) 4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동쪽 성벽은 산꼭대기부터
500∼600m의 분수령을 따라 험준한 지형과 암벽을 아용하여 요새를 이루고 있다.

 

서쪽 성벽은 산꼭대기에서 구포방면의 능선과 계곡을 건너 동쪽 성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1.5∼3m의 높이로 지형의 굴곡과 고저에 따라 쌓았다,


성벽의 요소 요소에는 포루와 암문을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성내에는 중군소(中軍所)와
군기고(軍器庫)· 산성창(山城倉) 등 수비에 필요한 건물과 군량·군기가 마련되고,
국청사(國淸寺)·해월사(海月寺)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국청사만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약 4㎞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그 주변의
 대규모 방어 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경영된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1972년 동문과 남문이, 1974년에 서문과 수구문
및 망루가 복원되었다.

 ~~~~~~~~~~~~~~~~~~~> 아! 금정산성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니

                                              금정산에 일단 올라가 보자

 

 범어사 입구에서 한컷

 

범어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이다.
1700년(숙종 26) 동계(東溪)가 편찬한 〈범어사창건사적 梵魚寺創建事蹟〉에는
신라 흥덕왕(826~835 재위) 때 의상이 화엄신중기도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자
왕이 매우 기뻐해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702년에 죽은 의상이 흥덕왕 재위기간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범어사의 창건 연대는 의상이 당에서 귀국한 670년 이후 생존기간의
 어느 때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라 화엄10찰(華嚴十刹) 가운데 하나로서 의상이 창건하고 그의 제자 표훈(表訓)이
 주석했다는 범어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
현감(玄鑑) 등이 법당과 요사채를 갖추어 중창한 이래 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범어사는 산의 지형을 이용해 제일 상단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을 세우고
 중단에는 보제루를, 하단에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중심으로 당우를 건립해
전체적으로 3단을 이루는 산지가람 배치로 되어 있다.

 

크응! 오늘은 산행시간이 길어 법어사를 찬찬히 둘러볼 시간이 없다!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그냥 스처 지나간다

 북문 오름길에서~

오랜만에 지갯꾼을 보니  지게를 지고싶은 생각이 든다.

 어릴적에 나무지게, 똥장군 지게 바지게 ~~전부 지어봤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북문에 들러선다.
북문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산성이 이어진다.

 

저멀리 고담봉 정상이 보이고
왕복 약 40분 소요된다.

 

 고담봉 정상 조망대에서 가야할

금정산성이 희미하게 보인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감당할수 없을정도의 바람이 새차다.
눈,비 까지 온다.
에구! 부산까지 왔는데~ 날씨가 이 모양이니~

 

 하늘은 이런 모양~
먹구름속에 뭐가 보이나 ~~~그냥 산그리메 뿐이지 뭐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불면 바람소리 듣고

산꾼이 다 그렇지 뭐!~

 

북으로 장군봉 천성산, 동으로 계명봉과 계명암, 남으로 원효봉 의상봉, 서쪽으로 신어산 동신어산 ~~
주변의 봉우리는 죄다 보이는 금장산의 전망대라는데
날씨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고담봉 정상에서 약 0.4km에 금샘(金井)이 있다는 표지판이 보이나
춥고 바람불고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인터넷 검색결과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빛 물고기(梵魚)가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

 

북문에서 바람과 비를 피하여 점심을 먹었다.
북문에서 왼쪽은 범어사, 오른쪽은 옛 천주교 목장표지판이 있다.

 

우리는 동문(4㎞) 방향으로 직진한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매끈한 산성의 모습--->의상봉 방향

아름답다! 그러나 왜 가는곳 마다 산성일까?

 

부산에도 담양 강천산에도,무주  적상산에도 함양 황석산에도 강원도 계족산에도~~

 

생각 해본다!! 

 대한민국!~

 

 

성곽을 따라 걷는다!

마냥 즐거움 보다는

      산성을 쌓아야만 했었던 옛 조상님들의

          애환을 잠시 생각 해 본다~

 

약 15분 정도 지나자

삼각점이 있는 원효봉(687m)에 도착한다.

 

 의상봉이다!

멀리서 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아 사자봉으로도 불린다.

 

원효봉에서 내려와 우측 너른 등산로 대신 왼쪽 성벽 능선을 택하니 

 뾰족한 돌산이 나타난다.
 

 제4망루 부근에서  북쪽으로 돌아보면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이 한눈에 펼쳐지고
서쪽방향으로 중성이 이어진다.

 

이어 산불초소를 지나면 제4망루가 한창 복원공사 중에 있다.

 

 그 옆(동쪽)으로 금정산 최대 암장인

 무명암이 뻗어있다.

 

 억새군락지!

 

가야할 방향

이곳은 억새가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넓은 안부가 있는곳(범어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있음)에

바람이 새차게 불어댄다.
억새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세다.

 

 자꾸 뒤돌아 보고 싶어진다.

 

 멀리 부산시내와

호수인가 바다인가

보인다

 金井(금샘)은 못가봐도

 꿩 대신 닭이라고~

 

금정산에는 이런 들샘들이 몇 군데 있다.

 

  뒤돌아 보고

    누가 따라 오는가?

      산성이 ~

 

 하늘엔 구름

     땅에는 바위와

        철지난 갈대!

 동문 옆으로~

  오르면 산성고개로 이어진다

 

정상등산로를 타지 않고 조망좋은 곳마다 오르내리니
나홀로 뒤쳐진것 같은데~
정신없이 걷다보니 동문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동문이 있었다. 

 

 

 

  산성고개 암릉에서 뒤돌아 본 금정산!

   맨위로 부터

        고담봉, 의상봉, 원효봉, 제4망루, 3망루~~

         그리고 동문이 밥알만하게 보인다.

동문에서 성곽을 따라 다시 10분 정도

삐알을 오르면 산성고개에 닿는다.

 

음! 부산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암릉을 찾았다.

이곳을 지나치면 더 이상 조망이 없을것 같아
먹이감을 살펴 본다. 
스나이퍼 조준 발사!


  바람이 새차게 불어~

  5년동안 정들었든 모자가 태평양으로 날아 가 버렸다!

 

정 들었던 모자!

날려간 방향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제2망루의 모습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기서 곧장 내려가야 하는데~~

 또 탈영을 한다

 

 여기가지 온김에 남문에서 눈도장을 찍고~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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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 주차장에서

우리부부는 해군에 복무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해운대로 가고
뫼산악회 님들과 헤어졌다. 

 

  겨울바다!    낭만적이지 않을까?

 

아들과 만나 해운대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날 새벽!

 

두 모자(母子)는 잠을 자고 산꾼은 먹이감을 구하려고
새벽같이 해운대 백사장으로 나갔다.

음 !겨울바다!

 아침 햇살을 쬐고 있는 해운대

 

 사람도 거의 없다! 여름철이면 100만 인파가 붐빈다는 해운대 해수욕장
가끔 외국인들과 조깅하는 사람들 뿐이다.


 

 이른 새벽!

 갈매기 부부는 한가롭게 해운대 백사장을 거닐고~

분위기 만점! 초상권 침해는 안될테지~

 

 이런 풍경~해운대에도  어촌이 있었다.

새벽 재래시장을 둘러 보고 싶어 약 3km떨어진 곳까지 왔다.

나는 마천루 빌딩과 해운대 앞바다 보다

이런곳에 눈길이 더 간다

 

촌넘이라 그럴까?

 

일상의 충전 !

사람이나 어선이나 열심히 일하고

충전하고, 일하고~

카메라 밧테리와 같이~ㅎㅎㅎ 

 

 엄마와 아들이~

 오랜만에 보는 둘만의 행복한 모습을 본다

 

그럼!   아버지와 아들은 ~~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여행중에는 모두가 어린이가 된다!

 

 

 갈매기들의 망중한! 

     여름한철 100만 인파가 붐비던 해운대에는

           이런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렇게도 담아보고~

오늘은 모두가 어린이가 되엇다!

사실! 안성산꾼 정신년령이 15세 수준이다!

 

같이 찍자는 아들의 요청에 지나가는 사람이 한컷을 부탁!

 

 

  어머니와 아들!

일출직전 바닷가를 산책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이 저의 앵글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 모습을 보면서 ~~

뫼님들과의 금정산 아름다운 산행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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