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문 그곳...
(구례 화엄사와 곡성 기차마을)
일년에 두번....
봄 가을에 친목모임에서 나드리를 간다.
오늘의 행선지는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과
천년고찰 구례 화엄사를 둘러 볼 심상이다.
일찍 서둘러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로 출발하였다.
남원 지나 곡성가는 길 곧게 자란 메콰세타이어 나무 사이를 지나...
역사의 애환이 담긴 이곳
곡성역에 당도 했다
일제 강점기
나라잃은 설움과 곤단함
빼앗긴 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곡성역......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열차는 60여년간의 남도땅을 가로질렀다
길게 늘어진 섬진강 물구이를 돌아
추억의 기적소리.....
오늘은 어떤 추억을 남길까?
길게 늘어진 섬진강 물구이를 따라
레일 바이크가 이렇게 출발 한다
여유로운 모습들...
전라선 폐선을 이용해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기차마을 내를 운행하는 레일바이크,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운행하는
레일바이크 ....
다시 들어보는 기적소리...
옛 곡성역과 기정역 사이 13km를 레일 바이크와 시간을 교대로
오고가는 단선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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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기적소리도 변할까?
시간이 흐르면
풍경도 변할까?
섬진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행렬
파란 섬진강
강가에서 .....
점심을 들고~~
20분 거리에 있는 구례 화엄사로 이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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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항상 여행의 시작 점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던, 남도 여행을 시작하던...
그것은 화엄사가 지리산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리산의 장쾌함과 이를 온 몸으로 끌어안는 산사의 포근함.....
그 때문이 아닐까?
화엄사까지 오르는 길은
나에게 마음과 평화 주고....
일주문부터 그 규모가 심상치 않은....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라고 적힌
현판이 유독 돋보이는 불이문
빛 고운 연등의 행렬
탑 그림자 드리운 석축 위에 잠시 쉬어가는 세월.
화엄사의 중심
천왕문에 이어지는 연등행렬
각황전 앞마당에 있는 석등도 국보 제12호....
이 석등은 높이가 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가운데 기둥은 장고 모양....
화엄사에서 다소 압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각황전의 위용 때문이 아닐까?
독야청정
말 그대로....
각황전과 석등 그 웅장함에
할 말을 잃었다
고색창연한 단청에 숨이 멎는 것만 같은...각황전
처마를 단청으로 채색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나무의 속살을 그대로 발가벗겨 보여주는 것 또한 단청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화엄사를 찿아가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웅장한 그모습 그대로...
지리산을 품에안고 나를 반긴다.
마음이 머문 곳...
지리산 화엄사
어머니 품과 같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구례 화엄사,
사계절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
언제봐도 아름답고 포근한 곳,...
초파일이 가까워 지나 보다
<천년의 화엄성지 화엄사 창건 연혁>
문화재의 보고 수많은 문화재와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불멸의 명작
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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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창건 연혁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599)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습니다.
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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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창건 연혁
신라시대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우셨습니다.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또 무문왕 17년(677)에 의상조사는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습니다.
경덕왕(742~764)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고,
신라말기 헌강왕(875)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시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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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창건 연혁
고려시대는 고려 태조 26년(943)에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하였고,
홍경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하였습니다.
문종(1047~1083)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가 중수
, 명종 2년(1172)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1236~1308)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1313~1330)때 조형왕사에 의한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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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창건 연혁
조선시대에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루었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릅니다.
인조(1630~1636)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건립과 더불어
선교 양종대가람이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습니다.
※자료:화엄사 홈페이지
일제 강점기
나라잃은 설움과 고단함
빼앗긴 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곡성역......
어머니 품과 같은 지리산 자락에 ....
마음이 머문 이곳 지리산 화엄사는
지리산 종주때
새벽 화엄사의 장엄한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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