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구냥산 ◈

- 소개(티앤씨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사천성의 미봉 쓰구냥산(四姑娘山 6,250m)

 사천성을 대표하는, 아니 중국을 대표하는 미봉 쓰구냥산은 마치 네팔 쿰부지역의 아마다브람을 연상시킨다. 높이도 비슷하며 모양새나 자태도 매우 흡사하다.

현지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란 점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쓰구냥산은 현지인들(당지장민들)의 친밀한 이웃이며 성스런 神山으로 숭배된다.

 유래를 보면 쓰구냥산은 네 명의 아름답고 선량한 낭자가 사랑하는 팬더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나운 표범과 투쟁한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러 네 개 아름다운 산봉우리로 변했다고 전한다.

이 산은 네 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걸치듯 서 있어 멀리서 보면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는데, 하나의 봉우리 같지만 서로 다른 네 개의 다른 봉우리고 서로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서로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기학학적 아름다움을 갖춘 산이다.

네 봉우리의 높이는 다소 차이가 있다.

쓰구냥산을 이루는 네 봉우리는 주봉인 야오메이산(磨妹山 6,250m)과 산꾸냥산(三姑娘山 5,664m),

얼꾸냥산(二姑娘山 5,454m),

그리고 다꾸냥산(大姑娘山 5,355m)이며 서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네 봉우리는 이 봉우리들을 잇는 횡단산맥의 동북부, 공래산맥의 중간, 사천성 소금현(小金縣)과 문천현의 경계에 있다.

산봉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이 지역이 공래산맥의 제일 높은 지역이다.

 산봉우리는 주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자연의 오랜 세월의 풍화침식작용으로 인하여 산세는 매우 가파르고 산등성이 위에는 층암절벽이 많다.

주봉 남쪽비탈에는 빙천(氷泉)이 몇 개 걸려있고 빙천의 혀끝은 직접 산기슭을 가리킨다.

서쪽 비탈과 동쪽 비탈은 보기만 해도 무서운 수백미터나 되는 층암(層巖) 절벽이지만 층암 아래는 풀과 삼림이 무성하고 골짜기에는 시내들이 흐르는 고산식생 지대이다.

쓰구냥산은 천서(天西)고원에서 동쪽으로 가파르게 성도평원으로 이어지며 인접해 있다. 중생대부터 세 차례의 지질운동으로 인하여 지질구조 변동이 몇 번 있었다.

지층은 습곡이 가파르게 형성되었고 산체가 올라갔으며 지층이 차단되고 단절되어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계곡과 산이 이루는 지층은 가파르고 복잡하여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산수를 지니고 있다.

쓰구냥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며 중아열대 기후와 대륙성 고원기후가 교차하는 기후대다.

 따라서 대체로 더운 기후이나 고도별, 지역별 차이가 크며 특히 기후변화에 의해 일교차가 크게 나타난다. 이런 쓰구냥산의 특수한 지리위치, 기후조건, 현저한 수직 높이 差는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번식하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고, 따라서 동식물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대표적으로 홍삼나무, 홍두나무등 진귀한 나무 종류가 많이 식생되고 이외에 천마, 패모, 동충하초등 명귀한 약재도 많이 산출된다.

 이곳의 짐승 종류는 60여종이 넘으며 새의 종류는 2300여종에 달한다.

 큰곰, 들창코 원숭이, 작은곰 등 30여종의 국가보호동물이 서식한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연 서식 되는 팬더곰의 자연보호구인 <와룡 자연보호구>가 바로 이곳이다. 쓰구냥산은 여러 봉우리가 불쑥 솟은 모습으로 경치가 온화하고 아름다우며 등산 트레킹하기 좋은 곳이다.

 

◈ 준비물

 ⊙ 등산장비류 : 배낭 2개(55리터, 40리터), 보조용 숄더백, 침낭(오리털 1,300g), 스폰지 매트리스, 등산화(고어텍스 트레킹용 中등산화), 샌달, 물통(1리터), 헤드랜턴, 등산용 지팡이 1쌍.

 

⊙ 의복류 : 바지 5(겨울용, 춘추용, 여름용, 반바지, 보온용 덧바지), 셔츠 4(쿨맥스 반소매 1, 긴소매 2, 겨울용 플리스), 고어텍스 자켓, 우모자켓, 모자 2(춘추, 겨울용), 장갑 2(춘추, 겨울용), 우비, 등산양말 3, 일반 양말 3, 스카프, 수건, 속옷.

 

⊙ 기타장비류 : 디지털카메라(4백만화소/256Mb 메모리추가)와 전지(전용전지 2, 알칼라인 6개), 등산용 칼, 시계, 온도계, 나침반, 볼펜, 라이타, 예비안경, 휴지, 비상약, 세면도구, 신발주머니(협찬), 아이스젤 헤어밴드(요것도 협찬), 스폰지방석.

 

⊙ 간식류 : 초코파이 4, 양갱 2, 과일통조림 2, 매실액.

 

 ◈ 일행 노들산악회 10명, 개별 참가자 8명(이상 손님 18명), 여행사 가이드 2명, 그 외에 현지인(장족) 셀퍼(마부 역할과 최종일 정상 등정 안내) 약간 명. 노들산악회 10명은 평균연령이 30대이고, 개별참가자 8명은 50대이어서 각기 "1중대"와 "2중대"로 호칭을 삼게 되었다.

 

 ◈ 첫날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가 잘 달려서 인천공항에는 예정보다 물경 4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조금 있으니 한 사람씩 도착하는데 카트에 실은 카고백(Cargo Bag, 처음 봤음)들이 해외산행의 경험들을 말해주는 듯 하다.

  나는 그냥 배낭만 두 개인데...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기내식을 나눠주는데 캔맥주를 세 개나 마시고 나니 도착할 때까지 그냥 잠만 잤다.

중국의 사천성 성도 공항. 자그마한 청사를 빠져나오니 다행히도 하늘은 맑다.

 오브넷 식구들의 기도가 통했나 보다.

 사천성은 원체가 흐린 날이 많아서 "사천성의 개는 해를 보면 짓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해를 보기가 어려우니 오랜만에 해가 나면 개가 이상해서 짓는다는 뜻이다. 시내에서 중국식당에 들어갔다.

 그 유명한 "사천요리"를 드디어 맛보는가 하고 기대를 잔뜩 했는데 관광객들 입맛에 맞추어 변질된 음식만 나오고 사천요리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요즈음 어디에 가든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통 현지 음식을 경험하려면 단체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소규모의 식당을 개별적으로 찾아가야 한단다.

  점심을 먹고 나서 기나긴 버스여행이 시작되었다.

 시내는 한창 공사중인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성도에서 이번 산행의 베이스캠프인 <일륭>까지는 서북쪽으로 245km에 거의 7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가히 큰 땅덩어리이다. 하긴 사천성의 인구만도 1억이 넘는다고 하니. 한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는 2차선 도로로 접어들더니 직선구간이 거의 없이 계속 좌우로 머리를 돌린다.

  노폭이 좁아서(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1.5차선) 커브를 돌 때마다 마주 오는 차에게 경적을 울려대느라 시끄럽기 짝이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蜀)의 땅이 바로 이 지역이 아닌가.

 삼국지에 보면 촉나라로 들어가려면 엄청나게 험한 계곡과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간다.  

 강릉에서 온 불어(佛語) 선생은 삼국지 얘기를 한참 설파하고 계시다.

  차는 점점 첩첩산중으로 들어선다.

 길가의 집들이 점점 뜸해지고 길 옆을 나란히 따라오는 개울물은 풍부한 수량에 넘실대는 물결이 래프팅 하기에 제격이겠다.

  개울 가에는 돌담으로 둘러쳐진 밭처럼 이상한 것들이 있는데 물어보니 모래와 자갈을 모으기 위한 시설이란다. 급류가 이곳 안으로 들어오면 흐름이 약해져서 품고오던 모래나 자갈을 이곳에 가라앉히고 물만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과연, 가다 보니 어떤 곳에서는 경운기 같은 걸 들이대고 모래를 퍼 담고 있었다.

 작은 고개를 몇 개 넘어가니 불뚝불뚝 솟은 산의 허리를 무참하게 잘라내면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구채구"라는 관광지로 가는 고속도로를 만드는 중이란다.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관광지이다.

 원래는 여행사에서 우리가 가는 쓰구냥산과 구채구를 묶어서 한 번에 돌아보는 7박 8일의 일정으로 패키지 상품이 되어있는데, 유독 짧은 일정에 산행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뜻이 맞아 4박 5일로 특별상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세계 최대의 "팬더곰" 자연보호구역인 와룡대웅묘(臥龍大熊猫)에 도착했는데, 시간 때문에 팬더 구경은 못하고, 저녁만 먹고는 다시 떠난다.

  이곳에서도 팬더를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팬더를 눈으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길이 없다.

 주변으로는 식당과 여관 비슷한 상가들이 많이 있는 것이 관광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곳 식당에서도 역시나 이상한 사천요리와 미지근한 맥주(사천성에서 차가운 맥주나, 냉수를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로 만족해야 했다.

 이제부터 길은 점점 오르막을 더해간다.

 바로 <바랑 PASS(또는 파랑산 고개-해발 4,457m)>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해발 1,200m에서 출발한 고갯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무려 3,300m 높이를 올라와서는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도 경사도는 오히려 지리산 관통도로 보다도 훨씬 약한 것 같다. 그 대신에 크게 휘돌아 구비를 감기 때문에 전체적인 거리는 엄청나게 길다.

  이 길을 내려가는 차들은 좁은 노폭과 커브 때문에 더구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 브레이크를 밟아대며 경적을 울려댄다.

 그래서 브레이크가 과열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고개를 자주 넘는 차들은 아예 브레이크를 식히기 위한 물탱크를 특별히 장치해서 다니고, 그렇지 못한 차들은 길거리에 "세차(洗車)" 간판을 내놓고 있는 노점상에게서 물뿌리기 서비스를 사야 한다.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훌륭하다고 하는데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으니 버스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1,300m를 내려가 쓰구냥산 산행의 베이스캠프 격인 <일륭> 마을(해발 3,180m)에 닿아 호텔로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고산병은 3,500m 근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며, 예민한 사람은 이 고개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고산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단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1중대에서 한 명이 벌써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이지만, 성공적인 정상 등정을 기원하기 위해서 2중대(개별참석자 8명)는 역시 미지근한 맥주로 결의대회를 열었다.

 

 ◈ 둘쨋날 새벽에 비 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겠다.

눈을 뜨자 얼른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도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번 산행은 고산증세 보다도 비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텐트에서 이틀 밤을 자야 하는 것도 있고, 비가 오면 오브넷 식구들에게 보여 줄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많이 내리기라도 하면 정상 등정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데. 아침 식사는 정말 기가 찰 정도로 간단 명료하다.

 명색이 그래도 별 네 개(우리나라로 얘기하면 무궁화 네 개)짜리 호텔의 부페식 아침식사가 빵 종류 4가지에 삶은 달걀과 이상야릇한 야채절임, 그리고 우유와 차가 전부이다.

 고산에서는 입맛이 없어서 잘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식사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래서야 어디 체력을 비축할 수가 있겠는가!

 입에 맞지는 않지만 힘든 산행을 위해서는 체력을 비축해야 하니까 꾸역꾸역 먹어둔다

 

  09:30. 전원 호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산행입구로 이동한다.

 현재 기온은 20도,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쬔다.

  다들 날씨가 좋다고 야단들이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을 빠져나간 끝에 조그만 팻말과 함께 등산로 입구가 있었다.

동네 약수터 올라가는 길처럼 별다른 특색이 없는 것이 기대와는 너무나 달라 보였는데 조금 가면서 폭이 차차 넓어지면서 오르막도 심해지고 고도를 올린다.

 채 5분도 못 가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어 서야 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느끼지 못 했는데 확실히 고소(高所) 현상이 있는 모양이다.

일행 중의 젊은 친구 하나는 벌써 어젯밤부터 머리가 아프더라고 한다.

우리는 무거운 짐(카고백, 공용장비)만 말에 실려 보내고 가뿐하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아직은 모두들 들뜬 기분에 즐거운 표정들이다.

 "고양이 코"라는 뜻의 <묘비릉>이 우리가 올라가야 할 능선이다.

  갈짓자로 비스듬히 오르막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걸 말을 탄 관광객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들은 우리를 말도 타지 않고 걸어가는 "강철 같은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돈이 없어서 말을 탈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불쌍하게 여기고 있을까?

  거의 한 시간쯤 지나니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탁 트인 시야에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지고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한쪽에 라마교의 상징인 하얀 탑이 서 있다.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탑에서 남쪽으로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산줄기는 바로 티베트로 가는 길이 뻗어 있다고 한다.

 빨리 걷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이게 된다.

아마도 해발 고도는 3,400m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지만 그다지 더운 날은 아닌데도, 목덜미와 손등은 따갑다.

자외선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이리라.

산책하는 속도로 30여분을 가니까 다시 두 번째 탑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쓰구냥의 네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모습을 필름에 담으려고 수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야오메이를 덮고 있는 구름이 벗겨지기를 한동안 기다렸다가 우리들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 본다.

 산행은 다시 이어진다.

 경사라고는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평탄한 구릉지대에 온통 고산지 야생화들이 뒤덮고 있는 속을, 때로는 그 꽃을 밟으면서 걷는다.

 이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해지지 않을 것 같다.

 에델바이스와 또다른 하얀 꽃이 바탕을 이룬 가운데 온갖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이 지역의 꽃들은 한국에서 보던 야생화들에 비해서 꽃송이가 상당히 작다.

 아마도 고산지대의 특징인가?

 작은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걸음이 자꾸 처진다.

 다시 세 번째의 백탑을 지나고 길은 능선의 비탈사면으로 내려가면서 발 디딤이 불편해진다.

 대개의 관광객들은 이곳까지 와서는 되돌아가거나 능선 아래 계곡 지대로 들어가 호수를 찾아가는 코스를 따른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능선의 오른쪽으로는 "해자구"라는 계곡이 이어지는데 "해자(海子)"란 호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해자" "쌍해자" "화해자" 같은 호수들이 있다.

 슬슬 배가 고프다고 느껴질 즈음, 저 멀리 파라솔이 보인다.

 약간의 평지와 작은 그늘이 있는 곳에 노점상 두 명이 파라솔을 펼치고 컵라면이나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그늘에 말똥을 피해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점심은 행동식이다.

 하나씩 배급받은 비닐봉지 안에는 캔으로 된 잡곡죽과 비스켓, 그리고 이상한 야채절임이 들어있다.

 그렇찮아도 머리가 묵직하니 흔들어 보면 돌덩이라도 들어있는 듯 한데 입맛이 날 리가 없다.

  비상식으로 가지고 온 스위트콘 통조림을 꺼내 먹었다.

 늘 먹어보던 것이라 그런지 좀 낫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다시 이어지는 등산로는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작은 관목들이 보이면서 잠깐씩이나마 그늘도 있다.

  주로 보이는 관목은 키가 허리춤에서부터 두 길 정도까지 자라있는데 가지와 잎에 억센 가시가 잔뜩 달려있고 그 사이를 헤치고 난 좁은 길은 또 말발굽에 깊게 패인 자국에 말똥까지 범벅이 되어 있어서 발을 디디기가 영 난감하다.

 그렇게 뒤뚱거리며 한 시간쯤 걸어나간 뒤, 다시 탁 트인 초원이 나타나면서 저기 언덕 위로 오늘의 숙영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는 "노우원자"라는 곳에 화장실까지 갖춘 제대로 된 캠프사이트가 있지만, 여러 가지를 감안한 가이드가 그보다 한참 위에 떨어진 공터를 캠프지로 잡았다.

 제법 넓직한 풀밭이긴 했지만 온통 가축의 똥이 널려 있고 약간씩 경사가 있어서 텐트 자리를 다시 옮겨야 했다. 텐트는 모두 2인용으로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가지고 간 새 텐트이다.

 여자가 두 명, 노인네(60세)도 두 분, 1중대도 10명으로 짝이 맞으니 어제 호텔에서 같이 잔 사람들끼리 자동적으로 같은 텐트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에 취사용과 식당용으로 대형 텐트 2개를 쳤다.

  텐트 안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까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식사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긴다.

 메뉴는 "닭도리탕"에 "자반고등어구이"다.

 닭은 아침에 살아있는 놈을 말에 매달고 온 것이고, 자반고등어는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이란다. 기발한 메뉴이건만 생각처럼 먹을 수가 없다.

 역시 고소증세 때문인 듯- 밥 한 공기를 겨우 비운다.

 이럴 땐 술 한 잔 하는 게 딱이겠는데, 모두들 고소증이 겁나서 억지로 참는 분위기이다.

 밤하늘에는 구름이 짙은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별바라기는 포기하고 그냥 침낭 속으로 기어든다.

 

◈ 세쨋날 텐트 안이 옆으로 약간 기울어 자리가 영 불편한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 아이고, 드디어 우려하던 비가 오는 모양이다.

  얼마나 내리려나, 언제까지 내리려나? 온도계를 꺼내 본다.

  텐트 안은 7도, 텐트 밖은 10도. 고산지대치고는 생각보다 온도가 높은데 한국에서의 같은 온도에 비해서는 좀더 춥다.

  한국에서 이 정도 온도라면 춘추복을 입고 자도(오리털 침낭) 덥다고 느낄 텐데, 여기서는 우모복에 겨울 바지를 입고 자고도 더운 줄은 몰랐다.

 침낭 안에서 뭉개고 있으려니까 아침 먹으러 오라고 소리친다.

 그래, 일단 밥은 먹어야 하니까 먹고 보자.

 식당 텐트는 1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2중대가 먼저, 1중대가 나중에, 교대로 먹는다. 오늘 아침의 메뉴는 밥에 미역국과 계란찜이다.

  통조림류라도 몇 가지 가지고 올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어차피 무거운 짐은 말에 실려 가지고 왔을텐데, 그걸 알면서도 평소에 배낭 무게 줄일려고 하던 습관이 저절로 나왔던 모양이다.

 미역국과 계란찜은 어느 정도 괜찮은데 밥은 영 아니다.

 깨작거리다가 나중에 누룽밥이 있다길래 그걸로 배를 채웠다.

  밥을 먹고는 또 하릴없이 텐트 안에서 노닥거리다가 한숨 또 자다가 시간을 보내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진다.

  좁은 텐트 안에서 있기가 답답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산 쓰고 나와서 돌아다닌다.

 어차피 원래 오늘의 일정도 고도순응을 위해 오전에는 주변 산책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능선 아래 계곡의 관광지인 호수 몇 개를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그건 물건너 간 셈이다.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모두들 캠프지에서 약간 떨어진 실개천에 가서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하면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다.

  어제 오후부터 무겁던 내 머리도 자고 나서 그런지 깨끗하다.

 옆 텐트의 입심 좋은 두 아저씨는 여러 사람 즐겁게 해주는 기쁨조 역할을 하고 있다.

  1중대의 한 명은 아직도 머리가 아픈 게 가시지 않고 있다.

 알고 보니 어제도 오후에는 말을 타고 올라왔단다.

  캠프 옆에 가축을 방목하면서 牧夫들이 잠자는 대피소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다. 구들돌 같이 얇게 잘라진 돌들을 쌓아서 벽을 삼고 지붕도 이었다.

음- 송동선씨가 보면은 삼겹살 구이에 제격이라고 얼른 하나 집어 지리산에 가져 가자고 할 텐데.

 목부들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했더니 극구 피한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짜파게티"로 점심을 먹고는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

 어제 오후에 비탈면을 타고 거의 3부 능선까지 내려왔었는데, 이제 그것을 도로 직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길은 다시 풀밭 길로 부드럽지만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가려니까 조금만 가도 숨이 차고 가슴이 뻐근해오면서 머리가 무겁다 못해 띵- 해온다.

 아이고, 다시 고소증세가 시작되는구나.

 2, 3분을 채 못 가서 숨을 돌려야 했다.

 같은 상태, 같은 경사도의 길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의 산보다 속도는 1/2 정도로 가는데, 숨가쁨은 2배, 다리 힘드는 건 1.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여름날 오후에 화개재에서 토끼봉 올라가는 생각이 든다.

 더덕 냄새가 강하게 풍겨 온다. 누군가가 더덕 캐서 반찬 하자고 하니까 가이드 얘기가 냄새만 비슷하지 더덕이 아니라고 한다.

  헐떡대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야크 떼가 오르막을 우르르 달려간다.

 야크가 덩치도 훨씬 크고(말은 몽고종으로 제주도 조랑말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힘도 셀 텐데 짐 싣는 일을 왜 안 시키나 물었더니 부리기가 말보다 어렵다고 한다.

 털북숭이에 머리는 가분수로 크고 털에는 온통 덕지덕지 뭔가가 엉켜붙은 게 가까이 오면 겁난다.

 한 시간 가까이 오르막을 올라서니 다시 풀밭 능선길로 나선다.

 아침비에 물기를 머금은 야생화들이 반짝거린다.

 가축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옆으로 따라오던 조선족 가이드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배낭을 집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 쳐다보니 웬 조그만 짐승(나중에 알고보니 멧돼지 새끼) 하나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탈을 오르내리며 벌어진 추격전은 결국 고산족(멧돼지)이 평지족(인간)을 완전히 가지고 논다는 평가를 내린 끝에 끝났다.

 한참동안 능선을 따르던 등산로는 다시 비탈면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실개천을 따르다가 지능을 돌아나가기를 몇 번,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과도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의 경험을 되살려 재빨리 텐트 자리부터 골라잡기 시작했다.

 똥 없고, 평평한 곳-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텐트를 완료하고 나니, 18:30. 현재 고도는 4,200m 기온은 14도이다.

 이제 내일의 정상 등정을 위해 오늘은 무조건 잘 먹고 일찍 푹 자야 한다.

 그런데 점심에 먹은 짜파게티가 영 소화가 안 되는지 속이 더부룩하다.

  저녁 메뉴는 꽁치통조림으로 찌개에 조림까지 완전 통일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숭늉으로 대신하고 만다.

  가이드가 고소약을 가지고 있을 텐데 좀 달라고 해볼까?

 고민하다가 오브넷 식구들의 성원으로 버틸 각오로 그만 두고는 침낭 속으로 기어 들었다.

 

◈ 네쨋날 긴장이 되었는지 밤새 비 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큰일이다.

  지금 비 오면 정상 등정을 할 수가 없는데.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02:00 가이드가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다.

 얼른 텐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니 비오는 기색은 없다.

  기가 막히게도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밤에만 비가 오고 아침에는 그치는 행운이 따라주고 있다.

 수많은 오브넷 식구들이 힘을 모아 기도해 주고 있으니 하늘도 어쩔 수가 없으리라.

  지리산에서도 이런 식으로 비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른 일어나 머리를 흔들어 본다.

  어제 저녁에는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주 깨끗하지는 않아도 많이 나은 것 같다. 아침은 전원이 누룽밥에 커피 한잔이다.

기온은 8도.

 가을 바지에 보온용 덧바지를 예비로 배낭에다 넣고 상의는 쿨맥스 셔츠 위에 우모복을 입고 고어텍스 자켓을 예비로 넣었다.

  고소에서는 체온이 떨어지면 큰 문제가 되므로 무조건 따뜻하게 입으라고 한다.

 방한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꼈다.

 

03:00 드디어 출발이다.

이제 해발고도 1,000m를 단숨에 치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너덜바위 지대에 길을 찾기 어렵고 밤이기 때문에 현지인 마부 4명 정도가 임시 가이드로 나섰다.

 마부 대장이 앞장 서서 모두들 일렬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꼭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행렬과 다름없다.

 아니, 하나 다른 점이 있다. 여기서는 5분도 못 가서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1, 2분 쉬기를 서너 번 하다가는 앉아서 10분 정도 쉬고 하는 식이다.

 길은 얇은 구들장 같은 돌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흔들흔들 살아서 움직이고,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헉헉 하는 숨소리가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온 사람들 같다.

 여기가 해발 4,300m 쯤이니까 산소량이 평지에 비해 얼마나 될까?(4천m에서 75%, 5천m에서 50%) 그래도 꾸준히 가는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선두 그룹에 끼어 심리적으로 낙오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2중대의 60세 된 연장자 두 분이 계속 앞장을 서고 나는 그 뒤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점점 대열이 길어지고 있다.

 젊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1중대(산악회 단일 팀)가 오히려 뒤에서 처지고, 오합지졸 같던 우리 2중대가 계속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1중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다그친다.

 출발한 지 2시간 30분, 시커멓던 하늘이 조금씩 벗어지며 그믐달이 수줍은 듯이 얼굴을 내민다.

그 오른쪽 위에 밝은 별 하나는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와는 별의 위치가 다르니까 알고 있었어도 소용이 없다.

 구름이 빠른 속도로 바람에 불려가고 있다.

 좋은 징조일 듯 싶다.

 오브넷 식구들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빌어 주었는데 네까짓 구름이 쫓겨 가지 않고 견딜 성 싶더냐!

 안부에 올라서니 이제는 2중대의 해외원정 베테랑들도 하나 둘씩 지쳐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강릉에서 온 불어 선생과 서울시청 산악회 대장만이 쌩쌩하다.

 이건 체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체질적으로 고소에 적응을 어느 만큼 빨리, 그리고 잘 적응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만년설 지대를 지나고 마지막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니 이제 공제선에 다꾸냥의 정상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다해 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동쪽에서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일출의 광경은 지리산의 그것보다 좀 못한 것 같지만 타이밍 만큼은 기가 막히게 맞췄다.

 아마도 이미 솟아 있던 해가 짙은 구름에 가려 있다가 벗겨지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내미는 모양이다. 새빨간 색감은 별로 없고 거의 흑백사진에 주홍빛 물감이 조금 떨어져 묻은 것 같지만 찬란한 햇살의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해발고도 5,355m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백두산의 갑절이고, 지리산의 거의 세 배에 이른다.

 쓰구냥의 주봉인 야오메이는 봉우리의 생김새나 질감이나 만년설에 덮인 모양새 모두가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데 우리가 오른 다꾸냥은 그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느낌이다.

기왕이면 야오메이의 6,250m 정상에 서고 싶지만, 거기는 전문 암벽등반가들도 현재까지 겨우 두 팀 밖에는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꾸냥의 정상은 별로 크지 않은 바위덩어리로 대여섯 명이 동시에 서 있기가 좁을 정도이다.

 서로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자리가 빌 틈이 없다.

 뒷사람에게 자리도 양보해야 하고, 바람은 세지 않지만 고소에서 영상 2.5도인 기온은 체온 유지에 문제가 있다고 경험자들이 빨리 내려가기를 재촉한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올라올 때는 긴장해서 못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내려가려니까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발자국 한 번 디딜 때마다 신발의 울림이 발바닥과 다리를 타고 몸을 따라 올라와 머리를 울리는 것 같다. 

이제 햇살은 완전히 퍼졌다.

너덜지대의 돌이 무너질까 봐 조심하는 데도 수시로 돌들이 밀려 떨어진다.

 만년설 지대를 지나면서 기어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시 뒤돌아 올려보니 다꾸냥의 정상 부위는 마치 고대 유적의 적석총 무덤을 확대해 놓은 것 같다.

밤에 올라갈 때에도 물론 이런 지형이라고 사전 교육을 받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캄캄한 탓에 실감을 못 했는데, 이제 밝은 속에서 보니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위태위태한 것이 어떻게 바람에 날리지 않고 견디어 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안부에 와서 마지막 남은 간식과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었다.

 산에서는 확실히 과일이 최고다.

 무거운 게 걱정이지만. 머리가 계속 무겁다. 이제 다 내려왔나 보다.

저 아래에 파란색 텐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5,355m 고산 등정을 다이아목스(고소증 예방 및 치료약)도 안 먹고 결국 해냈다.

 쟁쟁한 고산등정 경험자들과 청년산악회 멤버들 속에 어울려 산행이나 신체적응이나 컨디션 등등 모든 면에서 중간은 유지한 것 같다.

 1중대(산악회 멤버) 한 명은 고소증세가 너무 심해서 결국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캠프-2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이제 캠프를 철수하고 내려가야 한다.

 침낭을 꾸려서 압축팩에 넣고 끈을 조이려고 힘을 주는 순간, 핑- 하니 현기증이 난다.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키고 도둑질하듯이 살며시 그리고 천천히 배낭을 꾸렸다.

  엉기적거리며 텐트 밖으로 나와 다시 단단하게 박아놓았던 텐트 팩을 뽑으려고 힘을 주는데 이번에는 뱃속에서 울컥 하고 메스꺼움이 올라온다.

  팩을 놓고 바위에 가서 앉았다.

 건너편 봉우리도 쳐다보고 능선 아래 풀 뜯는 야크 떼도 바라보며 진정을 시키려고 하지만 결국은 토하고 말았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다고 먹으라고 하는 소리에도 손을 저으며 사양하고 만다.

  고소증세 극복했다고큰소리치더니 결국은 한 번 당하는 모양이다.

 캠프-2에서 베이스 캠프 격인 "일륭"까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전원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예정되어 있다.

 이틀 동안에 걸쳐 올라온 길을 단 3시간 만에 내려가는 것이다.

 올라올 때는 고소 순응 때문에 천천히 올라올 수 밖에 없었지만, 내려갈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잠시 사이에 수많은 말과 마부들이 몰려들었다.

  마부들은 남자 어른이 절반 정도에 젊은 처녀(꾸냥)들과 좀더 어린 사내아이들이 절반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 조랑말도 한 번 못 타본 터인지라 호기심이 앞선다.

 기왕이면 이쁜 꾸냥이 모는 말을 탔으면 싶었는데 심술궂게 보이는 사내아이의 말을 배정받았다.

 제주도 조랑말과 서양말의 중간 정도 되는 덩치인 걸로 보아 아마도 몽고쪽의 혈통인 것 같다.

 안장은 서부영화에서 보던 안장과는 많이 틀리다.

 승마 기술에 대해 간단하게 요령과 주의사항을 듣고는 한 줄로 차례차례 출발했다

. 처음에는 천천히 걷던 말이 손님이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되었던지 속보로 바꾸면서 엉치뼈와 항문은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할 때에는 안장의 오르내림에 박자를 맞추어 진동을 흡수하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대로 다 되는가 말이다!

 "올라갈 때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내려갈 때는 뒤로 젖히세요.

" 말은 좋은데, 실제로 해 보라지. 정 반대로 될 테니까. 두 다리는 등자를 디디느라 힘을 잔뜩 주어 무릎관절이 아파오고 두 손은 떨어질까 봐 안장 손잡이를 진땀이 나도록 꽉 붙들고 있으니- 관목 숲을 빠져나와 풀밭이 시작되자 드디어 마부는 뛰기 시작한다.

  맨 앞에서 신나게 달리던 나의 룸메이트가 결국 말에서 떨어졌다.

  다행히도 부상은 없어서 다시 올라타고 왔지만, 그 바람에 모두 달리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엉덩이의 무수한 고초를 겪은 끝에 드디어 매표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말을 내리는 순간, 모두들의 얼굴에는 마치 어떤 억압에서 해방된 듯한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찻길까지 짧은 내리막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 데 무릎은 3시간을 걸어온 것보다 더 뻑뻑한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 대합실 같은 곳에 매점이 있었다.

차가운 맥주를 기대했지만 냉장고라는 게 아예 없고 병따개나 컵도 없다.

그냥 선반 진열대에 있는 걸로 한 병씩 붙들고 나팔을 불었다.

아- 들꽃님 가게의 팥빙수가 생각난다.

매점에 있는 맥주 전량(달랑 6병)을 품절시키고 우리의 아쉬운 하산주는 끝났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타고 다시 성도로 가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바랑산 고개에 막 들어서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고개를 올라갈 수록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통에 고갯마루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으려던 계획은 또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고갯마루를 넘어 한참을 내려오니 다시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길가에 화장실과 노점상이 있는 곳에서 차는 잠시 멈춘다.

 이제 이번 산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와룡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는 자정이 넘어 성도의 호텔에 도착했다. 맥주를 유난히 즐기는(나하고 똑같다) 우리 2중대의 연장자께서 그 시각에도 전원 호출하여 중국인들만이 찾는 먹자골목 같은 곳을 찾아나섰다.

"사천성에 왔으면 정통 사천 요리를 맛봐야 할 거 아냐!" 이상한 향료를 잔뜩 넣어서 냄새가 좀 안 맞긴 하지만 특이한 맛의 요리에 모두들 맥주병을 수없이 쓰러뜨려 가며 무사히 산행을 마쳤음을 자축했다. 4박 5일- 한국에서부터 이 짧은 기간에 5,300m를 경험할 수 있는 산행은 아마도 이곳 "쓰구냥산" 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산행에 온 정성을 모아 날씨 좋으라고 기도해 주신 오브넷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특히 좋은 선물을 아주 적시에 협찬해 주신 허허바다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마도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쓰구냥산에 간다고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려 놓았기 때문에 약간의 무리를 무릅쓰고 다녀올 수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 각 구간별 소요시간 및 거리표

제1일 : 일륭(해발 3,180m)-노우원자 야영지(3,900m) 12km

제2일 : 노우원자(3,900m)-과도영 야영지(4,200m) 3km

제3일 : 과도영(4,200m)-다꾸냥 정상(5,355m) 5km 다꾸냥 정상(5,355m)-과도영(4,200m) 5km 과도영(4,200m)-일륭(3,180m) 15km

 

◈ 고산병 경험담 일반적으로 고산병은 3,500 미터 근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고산병의 증세 : 머리가 무겁다 → 몸에 열이 난다(평소보다 추위를 탄다) → 소화가 잘 안 된다 → 입맛이 없다 → 조금만 힘을 쓰면 현기증이 난다 → 메스꺼움을 느낀다 → 토한다 → 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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