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깊은 미소 ~팔공산 갖바위를 찾아서

 

1. 날자 : 2008년 11월2일(일)
2. 산행지 : 경북 대구 팔공산
3. 누구랑  : 휴휴산방
4. 날씨 : 흐리고 박무

 

 동봉에서 염불봉, 신령재, 관봉방향 조망
 


 

<참고 :팔공산 안내 표지에서 발취>

1. 봉황이 나래편 듯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대구의 진산이자 경북의 웅산인 팔공산은 대구 북동쪽에 장벽처럼 길고 웅장하게 솟아 있는
    산이다.
    동으로 관봉에서 능성재, 염불봉과 동봉을 거쳐 최정상인 비로봉(1,192m)이 솟구친 다음 서
    쪽으로 서봉, 파계봉, 한티재,  가산까지 대구광역시, 경산시,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 (3개시
    2개군)을 기르면서 능선길이만 2.5㎞나 뻗어있다.
    신라 오악중 중악으로서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비는 천신제가 올려졌던 팔공산은 신
    라때 부악, 중악, 공산등으로  불리다 고려때는 공산으로 굳어 졌으나 조선시대 들어 팔공산
    으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2. 고려 태조와 후백제 견훤의 격전지이며 호국의 땅
    신라말 후백제 견훤이 경주를 공략함에 고려 태조 왕건이 정병 5,000명으로 신라를 구원하러
    오다가 팔공산 동수에서 견훤과 맛서 싸우다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신승겸 장군은 왕건과
    옷을 바꿔 입고 태조로 가장, 적진에 뛰어 들어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 염불암 뒷편에 일인함이 있고 팔공산 스카이라인 동편에 일인석이 있는데 이곳이 태
    조가 피신, 앉아 쉬어갔던 곳이라  전하고 있다. 왕건은 전쟁이 끝난 후 장군의 죽음을 애도
    하여 지묘사를 세우고 명복을 빌었다.
    또한 임진왜란때는 공산성에서 의병과 관군이 항전했고 사명당이 동화사를 승군 본부로 삼
    고  왜적에 대항했다.

 

3. 대구 분지를 둘러싼 주산이며 문화 유산 지대
    팔공산의 깊은 골과 넓은 자락에는 신라때의 고찰과 석불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동쪽으로 영천 은혜사, 서쪽으로  파계사, 남쪽으로 동화사, 북쪽으로 제 2석굴암 등이 대표
    적이며 여기에 부속된 크고 작은 암자는 헤아릴 수 없다.
    이들 가운데 중요 지정문화재를 들어 본다면 국보 2점과 보물 9점, 사적 1점이 있다.

 

4. 팔공산의 유래
    태백산맥의 남부지맥으로 영남 지방의 가장 뛰어난 명산이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부악(父岳), 동수산(棟藪山)등 여러 가지로 불리어 졌으나, 신라말에 견
    훤이 경주를 침공했을 때  고려의 태조가 정병 5천으로 구하러 갔는데 견훤을 동수산 아래서
    만나 싸워 이기지 못했다.
    이때 신숭겸, 김락, 전이갑, 전의갑등 여덟 장수가 태조를 살리기 위해 전사했으므로 팔공산
    이라 한다고 전해오고 있단다.

 

5. 문화재
    국보 109호인 군위 삼존석불, 14호인 거조암 영산전이 있고
    보물인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동화사 당간지주,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3층 석탑,
    관봉 석조여래좌상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운부암 청동보살좌상과 사적 216호인 가산산성등
    국보 2점과 보물 9점, 사적 2점, 30개소의 명승지가 산재해 있다.

 

 <산행코스 : 동화지구 관리사무소-팔공스카이라인-동봉-염불봉-신령재-능선재-
            선본재-관봉-갖바위-광덕사-갖바위지구 주차장(7시간)>

 

 동봉을 향해 출발,
가벼운 발걸음!

 

 

빵재에서 잠시휴식 

 

 팔공산 정상 비로봉(1,192M)

 

 동봉(1,155m)에서 바라본 서봉 (1,041m)

 

 

 연무속의 치산계곡

  에궁! 날씨가 거시기 해서 사진이 거시기 하네 그려~

 

 비로봉 정상 통신시설

 

 

 20년전 2028년 11월2일로 부터~

 

100년전?  호랑이가 댕기던 길을

오늘은 타이거님이~ ㅎㅎㅎ

 

 

 애고! 심더러.
보기보다 능선이 술차게 기네?

 

물이 아까와서 못마셔버려!

애껴 먹어야지

 

 골프장에 코앞에 보이는곳?
멋진 암봉이다.

 

 와와! 멋진곳인데~
구름과 박무속에 아스라이 보이는 동봉 방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산님!

골프공이 바람에 실려와 머리 맞으면 어떻하려고

 

 선본재 암릉위에서 바라본 갖바위와 약사암 요사채
암릉에 가을가뭄이 심해서 단풍잎이 말라 색감이 누렇게 보인다.

 

 

 산칭구들이 저의 옆모습을! 

 앞에서보면 임신 8개월!~ 옆에서 보면 노숙자 분위기 ~~~

 

 

  저멀리 선본사 줌인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서


 

 갖바위의 뒷모습

 태어나서 처음 만난다!

 

설레임!~

앞모습은 어떤?

 

뒷통수가 건질건질해서 되돌아 보니
속이 시커멓게 탄 바위가 처다본다.

갖바위만 보지말고 나도 좀 챙겨주면 안돼?


 

 요사채를 당겨서 담아본다.

 

  갖바위에서 대구방향 하산길목에도 산사가?

 

산사의 저녁! 

여기도 사람 사는곳이니

 굴뚝에는 피어 오르는  흔적~ 

 

 갖바위의 모습!
여기 올때는 한가지 소원을 준비하고 와야한다는데
나는 오늘 아무 생각없이 왔다.
불청객 마냥!

문득, 갖바위의 아름답고 신비스런 모습을 최선을 다해 담아서
안성산꾼과 같은 아무생각없는 불청객 들에게 좀 알려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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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공산 선본사 홈피에서 찾은 갖바위부처님에 대한 자료>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 관봉(冠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른다.
관봉이 곧 우리말로 '갓바위'이므로 흔히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또 머리에 마치 갓같은 판석(板石)이 올려져 있기에 그렇게도 부른다.


관봉은 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과 함께 팔공산의 대표적 봉우리로서 해발 850m의 고봉(高峰)이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팔공산의 서남쪽이 모두 두루 조망(眺望)된다.

이 부처님은 화강암 한 돌로 만든 것인데, 몸뿐만 아니라 대좌도 역시 한 돌로 되어 있다.


불상의 광배(光背)는 없지만 뒤쪽에 마치 병풍을 친 듯 기다랗게 바위가 둘러져 있어 혹시 이 자연 바위를
광배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두께 15cm정도의 흡사 갓모양을 한 얇은 바위가 얹혀졌다.


바위 아랫면에는 육계에 맞닿는 곳에 둥근 구멍을 파서 육계에 맞도록 하였으며, 웃면 가운데는 같은 식의 둥근 구명을
도드라지게 하고 그주위에 화판(花瓣)을 조각했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인공적 조각임을 느끼게 한다. 얼굴은 양쪽 볼이 두툼하게 되어 있는 등 비교적 둥글고 풍만한 편이다.
입술은 굳게 다물어 대체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조화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마 한 가운데는 백호(白毫)가 둥글게 솟았고, 오똑한 코 아래의 인중도 두드러지고 있다.


두 귀는 길게 양쪽 어깨에까지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두 어깨는 반듯하고 넓어 당당한 신체와 잘 어울리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의 그것과 양식상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왼쪽 발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약합(藥盒)을 올려놓았다.

 

불상에 표현된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려 있으며, 불의의 옷주름을
표현한 선각(線刻)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가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보인다.
불상의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으로 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대좌 윗부분에는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이 엎고 있는데 이같은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이것은 팔공산 부근에 있는 군위(裙衣)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의 대좌형식과도 유사하다.

이 갓바위 부처님은 절에 전하는 바로는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선덕왕 7)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현재 보물 제 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의 학술상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 이름에서 굳이 약사불인 것을 밝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異論)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왼손에 보면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다. 또 옛날부터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근거 없이 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어쨌든 손위의 약합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는 약사여래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현재 갓바위 부처님 앞에는 약 80평 가량 널찍하게 터가 닦였고, 바닥에 돌이 깔리고 주위에는 철제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또 그와 함께 선본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좀 더 넓혀지고 계단과 철제 난간이 많이 보완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한결 기도드리기 편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위 위 부처님 바로 앞에는 최근에 화강암으로 만든 단(壇)과 돌거북, 그리고 양쪽에 석등을 놓았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일명 "갓바위">

 

그대는 아는가?  천년의 세월을~ 

 빌고 또 기원하면 내마음은 곧 당신의 심지(心地)가 되고, 

저마다의 바램은 달라도 이루려는 마음은 같기에 간절한 소망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아마도 대입수능시험을 앞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의 촛불
나도 빌어본다, 반듯이 소원성취 하시라고~ 

 

 갓바위 고귀한 관봉에 오르자 불심을 향한 마음들은

차가운 바람도 잠재우고

갖바위 천년의 그미소 그윽하여 번뇌의 근심을 잠시나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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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보시는 님들!

 바라는 소원 계시다면 

이루지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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